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18 민주화운동 (문단 편집) == 항쟁 주체의 성향과 이념 == 근본적으로 5·18 광주 항쟁의 성향은 [[대한민국 헌법]]에 대항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헌법]]에 충실했는데 그것은 [[반공주의]]에 근거한 [[우익]] [[자유민주주의]] 사상이었다.[* 김정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2013 , 73~76] >이제 총을 든 시민들은 맨손으로 시위를 하고 항의하는 보통 사람인 '[[민중]]'이 아니라 '무장한 시민' 이른바 '시민군'이라는 새로운 양태의 '무장세력'으로 전환했다. 이는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시민 무장투쟁을 의미하는 것이고...(후략)[* 여기서 말하는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무장봉기란 [[8.15 광복|해방]] 후부터 [[6.25 전쟁]] 후까지 있었던 [[좌익]] [[빨치산]]의 무장투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우익의 대한민국 체제 아래에서 발생한 최초의 무장투쟁이라는 뜻. 다시 말하면 같은 우익 체제에 대항하는 최초의 '''[[우익]] 무장세력'''이라는 의미다.] >---- >[[김영택(1936)|김영택]], 5월 18일 광주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 2010, 역사공간, 379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전개된 광주항쟁의 이데올로기가 '''[[6.25 전쟁|한국전쟁]] 이후 지배 이데올로기로 확립된 [[자유민주주의]]였으며, 그것도 [[반공주의]]를 전제하는 [[자유민주주의]]였다는 점'''은 여러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 >김정한, 1980 대중 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2013 , 81쪽 >---- >항쟁의 참여자들의 주요 이데올로기였던 [[자유민주주의]]는 '''오랜 냉전 체제의 산물인 [[반공주의]]를 전제하고 있었다'''. >---- >김정한, 2013, 83 >---- >도청에 [[간첩]] 여부를 조사하는 조사과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운동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반공주의]]를 견지했음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로 인해 자신들의 운동이 용공으로 몰릴 것을 우려한 전략적 대응이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반공주의]]에 따른 실제 실천 행위들이 너무 적극적이었고 일상적이었다'''. >---- >김정한, 2013, 86 >이에 관해 대표적인 사례는 가두방송을 담당했던 전춘심(전옥주, 당시 31)의 경험일 것이다. 5월 22일 그녀는 간첩으로 몰렸다가 풀려나기도 한다. (...) 그리고 결국 5월 26일에는 시민을 가장한 수사관들이 전춘심을 향해 "저 여자는 교육을 받고 온 간첩이다"라고 소리치자 '''몰려든 시민들에게 붙잡혀 보안대로 끌려간다'''. 수사관들이 이런 방식으로 주요 활동가들을 체포하거나 대중들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히 '''시민들의 [[반공주의]]가 진지하고 강력했음을 반증한다'''. >---- >김정한, 2013, 86~87 >---- >5월 21일에도 [[기자]]를 자칭하며 촬영하는 민간인에게 누군가 "저 자식 간첩이다"라고 소리치자 시위대열의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즉석에서 [[공수부대]]에 인계한 사례가 있었다'''. (...) 이와 관련해 최영태는 "간첩이라고 하면 모두가 경계를 하고, 심지어는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와 공수 사이에도 잠시 휴전을 하고 간첩 협의자를 인수인계할 만큼 시위대들의 [[반공]]의식은 강했다'''"고 평가한다. >---- >김정한, 2013, 87 >22일 오후 3시쯤, 20일 밤의 주인공이었던 전옥주와 차명숙이 용달차를 타고 도청광장에 나타났다. 이들은 19일 밤 이후 꼬박 3일 밤 새우며 방송을 하고 다니느라 목소리가 쉰 듯 했고 매우 지쳐 보였다. 두 사람이 용달차를 타고 수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도청광장으로 오자마자 학생들이 두 사람을 붙잡았다. 둘의 방송연설이 수준급이어서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듯한 데다 내용도 사실과 다른 과장된 내용이 많아 오히려 시민들이 당황하는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20일 밤의 시위가 그토록 확산된 것으로 두 사람의 선동적 방송연설에 그 연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항쟁주체 측은 그녀들이 혹시 북에서 보낸 공작요원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둘은 도청광장에서 붙잡혀 일단 도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후 6시쯤 지프차에 실려 군 수사기관에 넘겨졌다'''. 이같은 전옥주 차명숙의 검거를 놓고 일부는 정보요원이 두 사람을 검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학생이나 시민으로 위장해 들어왔다는 주장과 '''순수한 학생들이 군 수사기관에 의뢰해 진짜 간첩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신상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어 넘겼다'''는 2가지 설이 제기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후자일 것으로 보고 있었다'''. 둘은 지프차에 태우고 화정동,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던 경계선에서 군 수사기관에 넘겨줬던 사람은 광주시 주택과 공무원 이무길이었다.[* 1999년 2월 2일, 이무길 인터뷰. 이무길은 5.18 당시 광주시청 주택과 무허가 건물단속반원이었으며 저자가 인터뷰 할 당시는 광주시민회관 관장이었다. 그는 그 후 타계했다.] 물론 그녀는 북의 공작원이 아님이 수사당국에 의해 밝혀졌다.」 >---- >[[김영택(1936)|김영택]], 2010, 426~428 >광주항쟁은 신군부가 몰아붙인 것처럼 좌익과 우익의 이데올로기 갈등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자유민주주의 세력과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군부독재를 달성하려는 정치군인들과의 갈등이라는 데서 '''해방 후 일어났던 [[빨치산|일련의 좌익 봉기]]와 엄연히 구별된다'''. >---- >[[김영택(1936)|김영택]], 2010, 693 5.18 광주민주항쟁을 순수하다거나 무이념, 혹은 정치적 성향이 없는 것처럼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럴 수 있는 건 그 성향이 대한민국 체제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실 5.18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본으로 아는 거지만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을 몰라서 생기는 사례로 생기는 것이 대표적으로 [[5.18 민주화운동/왜곡/북한 개입설]]과 [[5.18 민주화운동/왜곡/무장폭동설]]이다. 5.18은 사회적 맥락에서 국가에 반대하려고 일어난 게 아니라, [[전두환]]이 내란으로 집권하는 과정에서 전두환 내란세력을 상대로 맞서 싸운 [[항쟁]]이었다. 논리적으로 보면 항쟁의 성향이 당시 대한민국 지배사상과 다를 이유가 없고 실제로 5.18 항쟁은 그랬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지배사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반하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하나회야말로 국가에 해를 끼치는 반란 세력이다. 실제로 5.18 사진을 검색하면 수많은 '''[[태극기]]'''가 나오며, 증언을 조사해 보면 수많은 '''[[애국가]]'''가 나온다. 그것 말고도 증언을 보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도 나오는데 이런 노래와 이념은 박정희가 [[10월 유신]] 때도 내세운 이념이기도 하니 그다지 대항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5.18 항쟁 당시 항쟁 주체들의 "[[애국]]"[* 애국이라는 가치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심과 "[[우익]]"성은 복잡하게 조사할 필요도 없이 [[김영택(1936)|김영택]] 박사의 『5월 18일 광주: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읽기도 어렵지 않으니 5.18 공부 입문으로도 적합하다. 강경보수 언론인 [[조갑제]]도 "[[김일성]]은 오판 말라", "[[북괴]]는 오판 말라"는 시민들의 구호를 근거로 광주 민주화운동은 반공 민주화운동이라고 증언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9&oid=127&aid=0000000434|2005년 증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393815|2007년 증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2&aid=0002340539|2013년 증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